Avery -monologue-

2020. 12. 7. 02:28


오닐은 특이할 정도로 죽음과 거리가 멀었다. ‘가늘고 길게’라는 신조 탓에 사람의 수명도 길어진 것인지 의심될 정도다. 에이버리의 증조할머니 조차 늙고 노쇠한 몸뚱이가 불편할 뿐 병색이나 얼굴에 진 그늘 따위 없었다. 친척들도 동일했다. 늙을지언정 죽음의 그늘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 중년, 청년, 어린아이들. 무슨 말의 서론이냐고 하면, 에이버리 하오란 오닐이 사람의 ‘죽음’을 겪은 것은 오늘 (그러니까 호그스미드의 그 날.)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


호그와트에 발을 딛자, 친구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다친 아이들은 치료부터 해라.’ 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귀중한 경험을 얻었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치료를 받겠어요? 다행히 인어들이 남긴 상처는 그들이 할퀴어서 피가 맺힌 얕은 상처뿐. 나중에 치료하기로 했습니다. 아, 인어에게도 독이 있던가요? 기억 안 나네요.

어쨌든 기숙사 방에 들어와 머리맡과 책상에 널어둔 책들을 펼쳤습니다. 전부 집에서 가지고 온 책들입니다. 점술 관련 책자로 몇은 동양에서, 몇은 이집트, 프랑스... 영어는 편하네요. 간신히 번역된 책을 구했습니다. 많은 양이지만 집에 두면 증조모께서 불사를 것이 뻔하기에 가져왔습니다. 전 증조모를 사랑하지만, 책들도 소중해서요. 할머니를 원망하느니, 무거운 것을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그 생각에 참을 수 없어진 것입니다.

책 페이지 사이 사이에 저만의 정리 본을 끼워두었더니, 페이지가 보이지 않고 어지러워 조만간 정리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중국의 책 3번째 중간 페이지에 다다르니 제가 원하던 자료가 있었습니다. 연초에 봤던 1년 운세요. 1달 단위로 끊어 크고 사건을 짧은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과정은 복잡하니 더 기억하지 않기로 합니다.

‘안락한 곳을 떠나면 해가 있을 것이다. 집에서 안정하면 이로울 것이다.’
‘많은 사람과 고난이 찾아올 것이다. 허나 주위에 도와줄 이가 많도다’
‘남쪽에 해가 있다. 북쪽에 머물면 이로울 것이다.’

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온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습니다. 오, 세상에. 이건 ‘제가 겪어야 했을’ 이야기로군요. 낮에 오피와 이야기하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요. 같은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없이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휘둘려 일을 그르치는 것은 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결국 팔자대로, 운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일도 결국 내가 겪었어야만 했던 것이죠. 선배가 사라지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며, 인어를 상대로 싸우지 않을 방법은 아예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갈 운명이었으니까요! 매 순간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방향을 정하고 상황을 판단했으며, 지팡이를 들었어요.

아아, 할머니, 증조모님! 당신은 점술이 우연과 희망을 먹은 헛된 것이라 하셨죠. 하지만 우연이 아니라면? 이것이 일어날 일이었다면? 당신은 사랑하는 손자에게 엄청난 거짓말을 한 게 분명해요. 저는 이렇게 진실을 찾아냈어요.

결론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요. 한낱 인간이, 마법사가 세계가 굴러갈 자리를 본다한들 무엇을 바꾸고 대비하겠어요? 결국, 초연하게 미래를 맞이할 뿐입니다.

“조심하세요.”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쁨에 밖으로 나오니 호그와트는 우울과 탄식으로 젖어있었습니다. 왜 다들 그렇게 슬퍼하고 아파하죠?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요! 더 나은 미래는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쁘지 않은가요? 기쁘지 않군요! 그래요. 최선을 다한 결과가 처참하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것이 정해진 운명인걸!

아, 오늘도 커다란 세계의 바퀴가 굴러갑니다. 수많은 운명을 싣고서요.

'Hoo' 카테고리의 다른 글

Avery -5-  (0) 2020.12.13
Avery -4-  (0) 2020.12.11
Avery -3-  (0) 2020.12.02
Avery -2-  (0) 2020.11.28
Avery -1-  (0) 2020.11.28